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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지식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새로운 작품 발견

by 오르페우스 2020. 8. 24.

 

1945년.

«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로 유명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새로운 작품 발견으로

미술계는 들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고 비웃은

미술계를 향한 한 남자의 완벽한 위조 복수극으로 판명되는데요,

영국 BBC에서 인류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사기꾼으로 선정 할 만큼

대단한 위조전문가이자 화가인 한 판 메이헤런

그는 누구이며 왜 이런 전대미문의 사기극을 벌이게 된 것일까요 ?

2차 세계대전의 독일군이 항복을 선언한지 9일 후인

1945년 5월 17일

 

 



나치에 도난된 미술작품을 되찾기 위해 창설한 연합군의

« 모뉴먼츠 맨»팀은

나치의 2인자였던 헤르만 괴링이 약탈하고 빼돌린 미술품을 보관하던 장소 중

한 곳을 발견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짤츠부르크 근처의 알토쎄지역에 있던

소금광산의 비밀공간에는

렘브란트,

보티첼리,

르누아르,

모네,

얀 반 에이크,

미켈란젤로 등

6577점의 회화,

2300점의 드로잉과 수채화,

954점의 프린트,

137점의 조각 작품이 숨겨져 있었죠.

나치는 이 광산에 폭약을 설치하여

자신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접근 시 폭발하도록 해두기까지 했답니다.

자신들이 가질 수 없을 경우,

차라리 모조리 없애 버리겠다는 계산이었는데요.

아무튼 모뉴먼츠 맨 팀은 믿을만한 첩보가 있었기 때문에

폭발물을 해체시키고 무사히 안으로 들어갑니다.

수천 점의 대단한 작품들 중에는

페르메이르의 것으로 추정되는

«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간통한 여인 »이 있었습니다.

페르메이르는 바로 우리가 «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로 잘 알고 있는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죠.

그림을 발견한 연합군은 작품의 판매과정을 추적하던 중,

나치에 적극 협력한 미술품 딜러이자 은행가로 활동한 알로이즈 미들을 통하여

한 판 메이헤런이라는 네덜란드 화가이자 딜러가

이 작품을 1943년 괴링에게 판매한 사실을 밝혀냅니다.

 

 



1945년 5월 29일,

네덜란드 경찰은 판 메이헤런의 문을 두드리게 되죠.

체포된 그를 네덜란드 당국은

« 국가의 중요한 문화유산을 적에게 팔아 넘긴 반역죄 »를 적용하여

그를 기소하려 합니다.

그는 사형선고까지도 가능한 상황이었죠.

체포된 지 3일째 되던 날,

판 메이헤런은,

자신은 괴링에게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판매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그려 위조한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진품으로 속여 팔았을 뿐이라 항변합니다.

그에 따르면,

그는 한 때 화가를 꿈꾸는 미술학도였지만,

인상주의와 아방가르드 미술이 유럽과 미국을 사로잡고 있던 1930년대 당시

16-17세기 네덜란드 화풍에 심취하여 그린 그의 작품들이

평론가들에게 예술적 가치가 없는 이미테이션이라는 평가를 듣고 무시당하자

분개하여 복수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는 프랑스 남부 니스 근처 작은 마을에서

6년간 위조연구에 매진하며

프란츠 알츠,

페르메이르 스타일의 완벽한 위작을 만들어 냈고

미술사학자, 비평가 등으로부터 진품일 뿐만 아니라

수작이라는 감정까지 받아내게 됩니다.

작품들은 가족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성을 소유한 노부부가

자신에게 판매대행을 맡겼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더 믿음이 갔을 수도 있어요.

그가 1937년에 완성하여

독일의 유명 미술관에 50만 길더에 판매한

« 엠마우스에서의 저녁식사 » 역시

자신이 그렸다고 법정에서 주장했죠.

당연하게도 조사관들과 판사는 판 메이헤런의 주장을 믿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아주 간단한 제안을 합니다.

자신이 페르메이르 스타일의 새로운 작품을 그려내 보겠다는 거죠.

1945년 7월부터 11월까지

그는 6명의 감시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새로운 작품을 그려냅니다.

《신전에서 설교하는 젊은 예수》.

그는 전문가들도 놀라버린 완벽한 그림을 그려내었고,

결국 적에게 협력하여 소중한 국가적 보물을 팔아먹었다는 누명을 벗었답니다.

어쨌든 그는 가짜 그림을 괴링 뿐만 아니라

여러 콜렉터들에게 팔았기 때문에

사기죄로 기소되어 1년의 선고를 받습니다.

 

 



그러자 한동안 반역자로 몰렸던 그는

갑자기 나치와 저명한 미술사학자들을 완벽하게 속인 대단한 남자로 타이틀이 바뀌게 되죠.

그는 예술계 전문가들을 비웃으며

그들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자신이 증명해 내었다며 큰소리쳤다고 합니다.

징역 1년을 선고받은 그는

실제 감옥에 수감되어야 했으나

법원 출석 마지막 날이었던 1947년 11월 26일

심장마비가 왔고

병원으로 보내져 투병하던 중

한달 쯤 후인 12월 30일 사망하게 됩니다.

그는 살아생전 현재가치로 무려

2천 5백만 에서 3천 달러의 돈을 벌어

들였다고 하네요.

그는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미술계 전문가들을 속일 수 있었을까요 ?

한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판 메이헤런은 작품을 위조하는 과정에서 작은 실수도 허용하지 않도록 치밀했다고 합니다.

그는 17세기 실제 쓰였던 염료를 벼룩시장 등에서 구해서 썼고,

실제 그 당시 작품들을 수집하여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작품을 완성한 후에는

표면에 반짝이는 바니쉬를 바르고

100-120도의 오븐에 구워 물감을 딱딱하게 굳힌 후,

미세한 균열이 생기도록 처리하고,

검정색 염료를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흩뿌리는 등

모두를 속이기 위해 철저한 연구와 치밀함을 보였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혹시,

판 메이헤런이 위조를 할 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스트리아 소금광산에서 발견한 페르메이르의 작품은 진품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나치에 협력했다는 무거운 죄를 피하기 위한 메이헤런의 거짓말이라면 ?

단서는 그림에 쓰인 « 코발트 블루 »색과 백연(白鉛),(회화용) 흰색 염료)에 있다고 합니다.

매혹적인 파랑색를 뽑아낼 수 있는 코발트는

사람들이 특수한 제련방법을 통하여

염료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요

페르메이르가 그림을 그리던 1600년대 말에는

이 블루가 사용될 수 없었으나

판 메이헤런이 위조한 작품에는 있다고 하네요.

백연 또한 17세기에 사용되던 것과

20세기에 사용되는 것의 납성분이 다르다고 합니다.

따라서 위조하였다는 그의 주장이 사실인 것으로 증명됩니다.

«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를 그린 페르메이르는 왜 유명한 것일까요 ?

세계적 유명세를 가진 화가지만,

우리가 현재 그의 작품으로 인정하는 그림은

겨우 35점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43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한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극소수에 불과한데다,

17세기 네덜란드인들의 일상을 아름답게 그렸다는 점,

즉, 평범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탁월한 시선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형태와 빛의 표현에 있어서

극도의 순수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괴링은 특히 페르메이르의 팬이었다고 하네요.

미술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예술적 표현으로서도 높은 가치를 가진 화가의 작품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면

전세계의 콜렉터들 사이에 그의 작품을 소장하려는 열망도

커지기 마련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작품이 발견된다면 ?

세간의 관심을 단숨에 휩쓸어 버릴 수 있겠죠.

아주 가끔 가족이 대대로 거주해오던 다락방에서

먼지에 파묻힌 대단한 작품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게 되는데요,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이 발견될까 궁금해집니다.